『토르: 라그나로크(Thor: Ragnarok, 2017)』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 3 중반을 장식하는 작품이자, 토르 시리즈의 방향성을 전환한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유머, 액션, 색감, 캐릭터의 재해석까지 모든 면에서 큰 변화를 보여준 이 작품은 북유럽 신화 속 종말 ‘라그나로크’를 배경으로 토르와 로키, 헐크, 헬라 등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펼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 주요 인물 변화, 그리고 상징적 의미까지 총정리합니다.
아스가르드의 종말, 라그나로크의 전개
영화는 토르가 불의 악마 수르트를 제압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수르트가 예언된 ‘라그나로크’, 즉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일으킬 존재라는 사실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그의 뿔을 회수합니다. 아스가르드로 돌아온 토르는 아버지 오딘이 사라졌고, 로키가 오딘으로 변장해 왕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두 형제는 오딘을 찾아 지구로 향하고, 노르웨이에서 진짜 오딘과 재회합니다. 오딘은 죽음을 앞두고 있으며, 자신의 죽음과 함께 첫째 딸 ‘헬라’가 부활하게 될 것이라 예고합니다. 헬라는 죽음의 여신이자 토르와 로키의 이복누나로, 과거 아스가르드를 정복으로 이끈 잔혹한 전사였습니다. 오딘이 사라지자 헬라가 현실로 나타나고, 그녀는 묠니르를 단숨에 파괴해 토르를 압도합니다. 토르와 로키는 도망치려 하지만 블리프레스트 포탈 중간에 튕겨 나가면서 각각 다른 장소로 흩어집니다. 토르는 우주 쓰레기 행성 사카르에 떨어지고, 거기서 벌어진 검투 경기에서 오랜 시간 사라졌던 ‘헐크’와 재회합니다. 한편, 헬라는 아스가르드에 도착해 군대를 몰살시키고 죽은 자들을 부활시켜 자신의 군대로 삼습니다. 그녀의 목적은 아홉 세계를 다시 정복하는 것. 이에 토르는 사카르에서 발키리, 로키, 헐크와 함께 ‘리벤저스’를 결성해 아스가르드로 귀환합니다. 헬라와의 전투에서 토르는 아버지 오딘과의 정신적 교류를 통해 진정한 힘을 깨닫고, 묠니르 없이도 천둥의 신으로 각성합니다. 그러나 그는 헬라를 물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라그나로크를 일으켜 수르트를 부활시켜 아스가르드를 파괴하게 함으로써 헬라를 제거합니다. 영화는 토르가 왕이 되어 남은 아스가르드인들과 함께 지구로 향하면서 마무리되며, 이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직접 연결됩니다.
새롭게 변화한 토르, 입체적으로 그려진 동료들
『토르: 라그나로크』는 기존의 토르 시리즈와 달리 캐릭터의 유머 감각과 인간미를 강조하면서도, 각 인물의 성장과 감정의 진폭을 확실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토르(Thor)’는 외형적으로는 머리를 자르고 묠니르를 잃지만, 내면적으로는 천둥의 신으로서 진정한 각성과 리더십을 획득합니다. 그는 더 이상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정체성과 힘을 인식하며, 진짜 왕으로 거듭납니다. ‘로키(Loki)’는 여전히 이중적인 인물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형 토르와의 관계 속에서 점차 유대감을 회복해갑니다. 처음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지만, 결국 토르를 돕고 아스가르드인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탭니다. 이 작품에서 로키는 영웅과 악당의 경계에 있는 복합적인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헐크(Bruce Banner)’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이후 지구에서 사라졌던 기간 동안 헐크 상태로 사카르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며, 말과 감정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는 존재로 진화했습니다. 배너는 자신이 다시 헐크가 되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하면서도 아스가르드를 위해 헐크로 변신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발키리(브루네 힐다)’는 전직 아스가르드 왕의 여전사로, 트라우마로 인해 술에 빠져 지내다 토르와의 만남으로 다시 싸움에 나서게 됩니다. 그녀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며, 이후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이어가게 됩니다. ‘헬라(Hela)’는 MCU 최초의 여성 빌런으로, 파괴적이고 권위적인 에너지로 토르를 압도합니다. 그녀의 존재는 아스가르드가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상징하며, 제국주의적 정복사의 역사와 책임을 묘사합니다. 그 외에도 ‘코그’, ‘스커지’, ‘수르트’ 등의 조연들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극에 유머와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종말과 재탄생, MCU가 보여준 신화 해석
『토르: 라그나로크』는 단순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마블이 신화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를 단순한 파괴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필연적 전환으로 해석합니다. 영화 속 라그나로크는 아스가르드의 멸망이 아닌, 부패한 구조의 청산과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이는 왕권과 정복에 집착한 과거에서 벗어나, 책임과 공동체 중심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상징적입니다. 또한 토르가 묠니르 없이도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은, 외적인 힘보다 본질적인 정체성과 내면의 성장이 진짜 영웅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리더십의 새로운 정의이자,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드러냅니다. 로키와 토르의 관계 또한 변화의 핵심입니다. 끊임없이 배신과 화해를 반복해온 두 형제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연대하고, 함께 아스가르드를 구하는 데 힘을 합칩니다. 이는 가족과 용서, 그리고 책임이라는 MCU의 핵심 가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종말’을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도,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감동은 결코 가볍지 않게 전달됩니다. 이는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특유의 연출력 덕분이며, MCU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게 만든 요인입니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히어로 영화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인 작품입니다. 토르의 진정한 성장, 라그나로크의 상징적 의미,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담은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감상한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